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화완옹주에 대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은 1738년에 용완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는데요. 정조의 고모이자 사도세자의 친동생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에 비해 그렇게 큰 유명세를 떨치진 못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조가 특히나 좋아하고 총해하던 딸 중 하나인 화완옹주. 어릴 때부터 오빠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하게 되면 그대로 숨김 없이 아버지께 일러바치기 일쑤였는데요. 비밀로 하고 싶어도 동생이 자꾸 일러대는 바람에 혼이 나기 일쑤였고, 남매 사이는 점점 틀어져만 갔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그녀 역시 유배 생활을 가게 됩니다. 양자인 정후겸이 정조를 제거하려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의 가족들 역시 모두 몰락하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이 때 이 여인은 옹주라는 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서인으로 강등당하며 '정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죠.
영조에겐 사도 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딸자식이 있었는데요. 그 중 가장 예쁨을 받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일들로 유배지를 옮기게 될 때에도 약한 처벌이 이루어 졌죠.
대신들은 그녀에게 강력한 벌을 내리는 것을 요구했으나, 아버지는 딸을 아끼는 마음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화완옹주가 석방되어 궁으로 돌아 왔을 때에도 많은 탄핵요청이 있었으나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죠.
죽음은 사도 와 비슷한데요. 뒤주에 갇혀 죽은 오빠처럼 불쌍하고 처참하게 죽게 된 것은 아니었으나, '정처가 죽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는다'라는 실록의 내용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죽기 직전까지 죄인으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가족의 삶이 참 순탄치 않은 것 같네요. 이 시기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반역을 일으킨 대가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처벌 수위가 좀 낮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을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아예 안가는 것은 아니라고 느껴지네요.
이상으로 화완옹주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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