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1년 김자점이 역모사건의 주범으로 처형되고 일가가 적몰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귀인 조씨의 간상을 조사하는 과정이 일어나면서 친며느리인 숭선군 이징의 부인 신씨를 모해하는데 동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종을 시켜 갖은 악독한 일을 저지르게 되는데요. 이것이 그냥 묻혔으면 상관없었을 텐데, 탄로나는 바람에 폐서인의 처분을 받고 진도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효명옹주에게 해당되는 이야긴데요.
얼마 뒤 다시 통천에 안치되고, 이듬해 이천으로 이배되어 위리안치 되게 됩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이, 효종이 이 효명옹주를 정말 많이 아꼈는데요. 그의 지극함에 죄인의 몸이었지만 몸이 아플 때는 의약품이 하사되었고, 철이 바뀔 때마다 의복도 하사되어 나름대로의 괜찮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1658년에 효종이 특명을 내리게 되는데요. 이때 풀려나서 서울로 돌아왔으나, 복호되지는 못하였습니다.
덕혜 옹주 는 들어봤어도 이 분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요. 조금 더 설명을 드리자면 본관은 전주이고. 인조의 서녀이며, 어머니는 귀인 조씨입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총명이 남달랐기 때문에 인조의 총애를 독차지 하였습니다. 1647년 옹주 책봉이 이루어졌고, 반정공신 김자점의 손자 세룡과 혼인하게 됩니다. 그 후 극진한 부귀를 누리다가 위의 상황처럼 된 것 입니다.
조선시대의 여인이며 출생과 사망은 미상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효명옹주는 자기 중심적이고 방자한 행동을 일삼았는데요. 한 예시로 궐 안에 잔치가 벌어지자 이복 오라비 인평대군의 처인 오씨와 자기 둘 중 누가 윗자리에 앉을 것인가 두고 다툼을 벌였다고 합니다. 인조가 이 아이를 너무 아껴 이 사람을 위에 앉게 하였더니 그 후로 인펴대군 부부와의 감정의 골이 깊어져 공주의 혼례 때는 저주의 뜻이 담긴 베개를 보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덕혜 옹주 등을 보며 이런 직관을 단 사람들은 모두 총명하고 바른 생활을 살 것만 같았는데, 효명옹주를 살펴보니 영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 그대로 돌려주며 살면 좋았을 텐데 오만방자한 행동이 이런 큰 사건에 휘말리게 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평생을 감시 속에서 살았다고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 지 상상도 안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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